오해- 연인들은 자기만이 상대방을 속속들이 이해하려는 맹목적인 열기로 인해 오해의 안개 속을 헤매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상상의 날개에 편승한 찬란한 오해다.
침묵- 말이 없어도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은 그런 사이는 좋은 친구일 것이다.
취미-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
본래무일물-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기에 내것이란 없다.
무소유-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나는
집착은 사랑의 또다른 모습이고, 결국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내방을 둘러보면 가득 들어차 있는 물건들이 내 삶을 풍족하게 해준다고 믿고 있었다.
침묵보다는 대화가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생각하는 바 이지만 아직 멀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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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전 거처를 지금
의 다래헌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
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애들뿐이었다. 그애들을 위해 관계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애들의 건
강을 위해 하이포넥슨가 하는 비료를 바다 건너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필요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
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꼿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
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레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같이 좋
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
가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
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
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
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